비둘기야 날아라

얼마 전 비둘기가 유해동물로 지정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간도 살기 힘들다는 도시 한복판에서 평화의 상징이라는 본인의 타이틀에 걸맞게 살아가는 비둘기.
포동포동 살이 쪄 날개는 퇴화 직전이 되고, 날기보단 걷기를 선택한 그들의 모습이 과연 그들만의 잘못일까?

후진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평화를 외치며 많이 많이 수입하고, 많이 많이 먹어라 모이를 주고..
그렇게 남 부럽지 않게 잘 키워 놓고서는 이젠 모이를 주면 벌금을 물게 하고, 해가 될 시엔 잡아도 된단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비둘기만의 잘못일까. 물론 나도 비둘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닭둘기란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고, 그들이 내 머리 위를 퍼덕이며 지나갈땐 난데없는 괴성을 지르곤 한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둘기를 해결 한다는 방법이 고작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식의
비인간적인 대처라는게 마냥 씁쓸하고 못마땅 할 따름이다. 이런 결론이 나도록 방치해 둘 수 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나의 갑작스레 난데없는 비둘기 타령은 작은 만남으로 부터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이 시끌시끌 소란스러운 때가 있었다. 잠결에 일어나 귀를 기울여 보니, 비둘기 내외가
우리집 스티로폼 박스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데.. 이게 무슨 귀신 짜장면 곱배기 시켜먹는 소리야...

나뭇가지 한 두 서너개 물어다 놓을 때 까진 가족 모두가 긴가 민가 했는데..
어느새 박스 안은 나뭇가지부터 철사, 전선 등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게 나름 완성이랍시고 여기서 살기 시작한 비둘기 신혼부부


그렇게 터를 잡기 시작한 비둘기 부부는 아침마다 우리집으로 출근을 하더니,
어느날 부터는 암컷으로 추측되는 한마리가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살기 시작했다.
가끔 내부를 들여다 보러 가까이 가기만 하면 어디선가 수컷이 날아와 퍼덕퍼덕 위협까지 하더라는..
(우리집이야!! 방빼 이놈들아!!ㅠㅠ)



참 지저분 하다. 엉덩이 배겨서 저기 어찌 앉아있나..


그후 비가 부슬부슬 오던 밤에 암컷 비둘기는 알을 낳았고, 알을 낳는 내내 수컷 비둘기가 스티로폼 앞에 서서
암컷을 지키고 있었다. 비둘기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터라 어쩐지 멋있고 막 그러네... 

자꾸 쳐다보면 세들어 사는 둘기 부부네가 신경 쓰일까봐 이후로 우리 가족은 멀리서 쳐다만 보는데, 보름이 넘도록
새끼가 부화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둘기 부부네 보면 둘다 체구도 작고 날렵한것이 아마 초산인거 같더니만
어느날 보니 알이 스티로폼 밖으로 굴러 떨어진것도 모르고 나무가지들을 품고 있는것을 발견..ㄱ-

총 두 개의 알을 낳고, 보름 가량을 품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결국 둘기네 부부는 부화에 실패하고 이사를 갔다. 



21세기를 사는 둘기씨네 집 재료..

알은 버리고 간걸 보니 무정란 이었다거나, 아마 품는 법을 몰라서 부화에 실패한 듯 싶다. 
아니면 저 열악한 단칸방이 문제 였는지도.. 둘기 부부가 이사하고 난 뒤 냄새 때문에 스티로폼을 버렸는데,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했는지 일주일 만에 다시 우리집을 찾아오기도 했다.(이제 세 안놓습니다.)  

그렇게 둘기 부부가 왔다간 뒤론 비둘기가 싫지 않게 됐다. 
비둘기라는 종족이 애초부터 현재의 모습처럼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모든게 인간이 그렇게 만든
가해자라는 걸 새삼 느끼고나니 불쌍하기도 하고.. 인간은 정말 못됐다 싶기도 하고..

무료했던 일상에 작은 놀라움을 주고 간 둘기 부부. 앞으로도 금슬 좋게 오래오래 살으렴.



by Realhare | 2009/06/12 00:52 | + Today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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